빗자루와 밀걸레를 아내 다음 가는 동반자로 생각한다는 전남대학교 후생과 직원 윤상화씨. 그가 맡은 일은 전남대 제 2학생회관을 청소하는 것이다. 취직 후 그가 처음으로 배속 받은 곳은 전남대부속중학교에서 5년간 청소를 했다. 다른 일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비질과 걸레질만 열심히 했다. 요즘도 윤상화씨는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다.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져 있지 않았나 살펴보고 종이 조각이라도 한 장 떨어져 있으면 얼른 쓰레받이에 주워 담는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동료들은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말할 수 없이 부지런하고 성실한 친구지요. 덩달아 우리들도 쉬엄쉬엄 할 수가 없다니까요."
전남대 안에는 윤상화씨의 팬이 적지 않다. 오다가다 마주치면 깎듯이 인사를 하는 학생도 많고, 더러는 고민거리를 들고 와 그의 의견을 구하는 학생들도 있다. "여기 드나드는 학생들이 모두 제 자식이나 다름없어요. 실제로 제 큰아들과 큰딸도 이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그의 이면에는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휴지 하나 시 하나] 등 모두 여섯 권의 시집을 낼 정도로 문학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의 나이 올해로 51세. 앞으로 5년 후에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도시 생활을 거두고 고향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 때까지는 '82학번 아저씨'로서 변함없이 제 2학생회관을 지키며, 자신이 쓴 시의 한 구절처럼 '휴지 하나 줍고 시 한 줄 쓰고, 담배꽁초 하나 줍고 시 한 줄 생각' 하며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작정이란다. |